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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진리 #3 삭개오의 구원

작성  광주교회   등록  2016.03.11 16:33:46   조회  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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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의 구원

 

(성경) 누가복음 19:1-10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1. 여리고

누가복음 19:1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성경에서 「여리고」는 저주받은 곳이다(수6:26). 사실상 여리고는 저주받은 온 세상을 대표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저주」라는 말이 처음으로 언급된 곳은 창세기 3장이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을 때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고 사람은 종신토록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수가 있게 되었다(창3:17-19). 이것이 바로 저주이다.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분리된 것이고, 저주는 사람이 하나님을 떠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원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여 에덴 동산에 두셨다. 에덴은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에덴 동산에서는 사람이 수고할 필요가 없이 하나님이 사람의 공급이요 만족이셨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고 살 수가 있게 되었다. 땅 위의 모든 생물에게 먹을 것이 있지만 유독 사람만이 배고픈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월요병」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들어도 억지로 몸을 일으켜 일하러 나가지 않으면 누가 당신을 먹여 주겠는가? 이것이 바로 저주받은 사람의 상태이다.

또한 공부하는 것이 하나의 저주이다. 사람이 물론 배워야 하지만 이 세상에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부터 박사 학위를 딴 사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공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가? 모든 아이들이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고, 공휴일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는가? 이전에 학교에 다닐 때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겹치면 속이 상했던 기억이 나지 않는가? 이것은 공부하는 것이 저주임을 잘 보여 준다. 사람들은 학위와 학벌을 자랑한다. 물론 힘든 과정을 참고 견뎌서 학위를 얻는 것이 사람에게는 자랑일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저주인 것이다. 에덴 동산에는 학교가 없었다.

기후 또한 하나의 저주이다. 에덴 동산에서는 기후가 사람이 생활하기에 가장 적당했다. 거기에는 에어컨도 필요없고 난방기구도 필요없었다. 더워서 옷을 벗을 필요도 없고 춥다고 옷을 껴입을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더위와 추위에 시달리게 되었다. 특히 우리 나라의 기후는 봄, 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길다.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더워 죽겠다」고 말하고, 또 조금만 추워지면 「추워 죽겠다」고 말한다. 이 「죽겠다」는 말이 바로 저주의 표시이다. 심한 기후의 변화 때문에 계절에 따라 얼마나 많은 옷이 필요한가! 옷 한 벌을 장만하려면 월급의 삼분의 일이 없어지지 않는가? 사람들은 패션을 자랑하지만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 저주이다.

또 다른 저주는 각종 질병이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날 때부터 병약한 체질을 가지고 나온다고 말한다. 그러다가 이것이 겉으로 드러나면 병에 걸리는 것이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질병에 시달리는지 모른다. 「나는 건강하다」고 자신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길을 가다보면 100미터 간격으로 병원과 약국이 있다. 병원을 아무리 지어도 입원실은 여전히 부족하다. 게다가 한 번 진찰을 받으려면 얼마나 많이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이 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때 만물이 다 사람을 위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혼자 살아보겠다고 고집 부릴 때 모든 것이 다 우리를 괴롭힌다. 하다못해 모기 한 마리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다. 당신은 얼마나 더 버티려는가? 이제 그만 마음을 돌이켜서 하나님께 돌아오라.

결국 마지막 저주는 죽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나서 일생을 어둠 가운데 헤매다가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당신의 인생의 목적인가? 얼마나 더 고집을 부리겠는가! 이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우리를 부르는 것이다. 이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2.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이 저주받은 도시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였다. 그가 세리장이었다는 말은 명예가 있었다는 것이고, 부자였다는 것은 돈을 가졌다는 의미이다. 삭개오는 저주받은 땅에 사는 하나님을 떠난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 삭개오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양심을 팔아먹고 민족을 배반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와 돈을 얻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팔아먹고 법을 어겨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가? 그러나 이렇게 해서 얻은 재물로도 사람은 결코 만족할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나서 아무리 땀을 흘려 일해보라. 결국 당신이 원하는 것을 모두 얻는다 해도 결코 만족할 수 없음을 발견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자가 되면 만족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천만 원을 가진 사람은 일 억을 가지고 싶어하고, 일 억을 가진 사람은 십 억을 갖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얼마나 부자가 되어야 당신은 만족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마음이 작은 것 같지만 바닥이 없는 구덩이와 같아서 무엇을 채워도 족함이 없다. 삭개오는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 양심을 팔고 민족을 배반해 가면서 일생을 허비했지만 결코 만족을 얻지 못했다.

 

3. 예수를 보고자 하여

삭개오는 예수님에 관한 말을 듣고 그분을 보고자 했다. 이것은 삭개오에게 명예와 돈이 있었지만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삭개오가 자신의 만족하지 못한 상태를 깨닫고 예수를 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이것은 너무나 복된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서 정신없이 돈과 명예를 얻으려 하다가,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뭔가 허전함을 느껴서 예수를 만나고자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 축복의 시작이요, 구원의 시작이다.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하다가 재산을 다 허비한 후에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마음이 생긴 것 처럼, 당신 속에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첫 단계인 것이다.

 

4.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볼 수 없음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고자 했지만 그를 방해하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다. 하나는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가 키가 작았다는 것이다. 예수를 둘러싼 무리가 많다는 것은 환경적인 문제이고, 키가 작다는 것은 천연적인 문제이다. 이 두 가지 문제로 인해 삭개오는 주님을 만날 수 없었다.

예수를 둘러싼 이 많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은 겉으로는 주님을 잘 믿는 것 같지만 속에는 주님의 생명이 없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들은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고 종교를 빙자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비도덕적인 일까지도 행하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당신이 주님을 만나도록 돕지 못하고 오히려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 때문에 삭개오와 같이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방해를 받는다. 주위에 있는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의 잘못된 모습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 하나의 문제는 삭개오의 키가 작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지만 혼자서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다. 주님을 만나고자 하지만 성경도 모르고, 복음의 진리도 모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다.

 

5. 앞으로 달려가

그러나 삭개오는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달려갔다. 주님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따라가지 말고, 그들을 뒤로 하고 앞으로 달려 가라. 그들을 따라가면 결국 불못에까지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들을 따라가지 말라. 그들을 상관하지 말고 제치고 앞으로 달려가라.

 

6. 뽕나무에 올라감

삭개오는 둘러싼 무리를 헤치고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다. 뽕나무는 당신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이 사람들은 당신에게 복음의 진리를 말해 줄 수 있고, 당신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고, 당신에게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려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참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확신과 거듭남의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찾으라. 그리고 그들의 도움을 거절하지 말고 겸손하게 그들의 도움을 받으라. 이것이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

 

7.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심

삭개오가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갔을 때 주님은 그리로 지나가셨다. 겉으로 보기에 삭개오가 주님을 보기 위해 찾아온 것 같지만, 주님은 이미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 여리고로 오셨다. 우리는 다 저주받은 여리고에 사는 저주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찾아갈 수 없을 때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셨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면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와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해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고, 지금 우리의 앞을 지나가고 계신다. 그분을 외면하지 말라. 지금 당신 앞으로 지나가시는 주님을 만나라.

 

8. 삭개오를 부르심

주님은 삭개오가 있는 뽕나무 앞에 이르러 그를 우러러 보시며 「삭개오야」하고 부르셨다. 누구도 주님께 삭개오를 소개한 적이 없지만 주님은 이미 삭개오를 아셨다. 우리가 주님을 알기 이전에 주님은 이미 우리를 아신다. 그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주님은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단 한 사람, 삭개오만 부르셨다. 주님은 그분을 진정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삭개오의 마음을 아신 것이다. 부모도 당신의 깊은 속을 모르고, 친구나 심지어 남편이나 아내도 모르지만 주님은 당신의 깊은 마음을 아신다. 오, 주님의 그 부르심을 들어보라. 「삭개오야」, 이것은 책망하거나 나무라기 위한 부름이 아니라 부드럽고 다정한 부르심이다. 주님의 부르시는 음성을 들을 때 당신의 인생이 바뀌고, 목적이 바뀌는 것이다.

 

9.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주님은 삭개오를 쳐다 보시며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삭개오 안에 들어가기를 갈망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보여 준다. 주님은 오늘 당신 속에 들어가기를 갈망하고 계신다. 주님의 이 갈망을 거절하지 말고 지금 그분을 당신 속으로 받아들이라. 주님을 당신 속에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구원은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받는 것이다. 내일로 미루지 말라. 내일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늘 주님을 당신 안으로 받아들이라.

 

10. 급히 영접함

삭개오가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급히 내려와 주님을 영접했다. 구원받기 위해서 술을 끊고, 담배를 끊거나, 행동을 고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된다. 현재의 상태 그대로 다만 주님을 영접하라.

삭개오는 급히 주님을 영접했다. 영접(迎接)이란 한자어이고 우리 말은 「맞아들이는 것」이다. 손님이 집에 왔을 때 거절하지 않고 집 안으로 맞이하듯이 주님을 당신 안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바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가? 요한복음 1:12은 영접하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라고 말한다. 영접하는 것이 곧 믿는 것이다. 영접이 곧 믿음이고 믿음이 바로 영접하는 것이다. 주님을 내 안으로 맞아들이는 것이 바로 믿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어떤 사실을 옳다고 인정하거나 수긍하거나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내 안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믿는가? 그분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실제로 어떻게 하는 것인가? 로마서 10:13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고, 주님의 이름을 믿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이렇게 주님을 내 안으로 받아들일 때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면 주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분의 이름은 주 예수이시다. 우리가 주 예수여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고, 이렇게 부를 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입을 열고 마음을 열어서 이렇게 기도해 보라. 주 예수님, 주님이 저주 받은 땅에 사는 나에게 찾아오심을 감사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지금까지 주님을 떠나서 다른 것들을 붙잡으려고 애썼지만 아무 것도 저를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이 저를 부르심을 감사합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내 안에 영접합니다.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를 구원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