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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진리 #5 - 탕자를 받는 아버지의 사랑

작성  광주교회   등록  2016.03.11 16:40:26   조회  208


탕자.jpg 

탕자를 받는 아버지의 사랑

(성경) 눅 15:11-24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에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하더니 다 없이 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 가니라.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1.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성경 전체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여러 모양으로 말하고 있다. 이 비유에서는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로 묘사한다. 이것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과 같이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가리킨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지어졌다.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생명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창조의 면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러나 이 아들은 잃어 버린 바 되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세 가지 비유가 나오는데 그 공통점은 모두 잃어 버린 바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의 문제는 물질을 잃은 것이 아니고, 가치관을 잃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2. 나누어 주었더니

아버지는 아들의 부당한 요구에도 모든 것을 나누어 주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나누어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햇빛을 나누어 주시고, 공기를 나누어 주시며, 비를 나누어 주신다. 사람의 모든 타고난 능력 또한 하나님이 나누어 주신 것이다.

 

3. 먼 나라에 가서

아들은 아버지에게서 모든 것을 받고서 먼 나라로 가버렸다. 먼 나라는 어디인가? 먼 나라는 세상 나라이며 사탄의 왕국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집과 아버지의 왕국을 떠나서 세상 나라와 사탄의 왕국으로 가버렸다. 세상은 교회로부터 얼마나 먼 나라인지! 물질적으로 세상은 바로 우리의 곁에 있는 것이지만, 영적으로 말할 때 세상과 사탄의 왕국은 아버지의 집인 교회로부터 참으로 먼 나라인 것이다.

여기서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근본적인 죄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살인, 강도가 사람의 큰 죄라고 생각하겠지만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 바로 죄라고 말한다(렘 2:13). 죄란 하나님과 사람의 분리인 것이다(사59:2). 사람들은 이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다 허비했기 때문에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재산을 탕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떠난 것 자체가 죄인 것이다. 선이든 악이든 아버지를 떠난 것은 다 죄이다.

영적인 일의 판단 기준은 성공과 실패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연합이다. 심지어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다해도 하나님과 분리되면 다 죄인 것이다. 사람의 모든 종교는 밖의 행위를 개선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복음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4. 크게 흉년이 들어

14절은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라고 말한다. 세상은 다 흉년이다. 세상에 무슨 생명의 양식이 있는가? 날이 더할수록 가치관이 몰락되고, 도덕이 무너지며, 인정은 메마르고, 황금 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이 아닌가? 물질이 더 풍족해지고 과학이 점점 발달 할수록 인간성은 점점 더 파괴되어 가지 않는가? 세상은 참으로 흉년이 들었다.

 

5.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방탕한 생활로 모든 재산을 탕진한 후에 이 아들은 돼지를 치면서 생계를 벌었다. 구약에 따르면 돼지는 더러운 짐승이다. 이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떠날 때 죄 짓는 생활을 하기 시작함을 보여 준다.

온 세상은 다 돼지 우리이고,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은 다 돼지를 치는 것이다. 당신의 온 몸에는 더러운 돼지의 냄새가 완전히 배어있다.

 

6. 쥐엄 열매

그러나 힘을 다해 돼지를 친다해도 결국 당신이 얻는 것은 쥐엄 열매일 뿐이다. 문학, 철학, 예술을 통해 당신이 얻는 것은 결국 쥐엄 열매이다. 당신이 얻는 것이 모두 쥐엄 열매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이 결코 그 모든 활동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쥐엄 열매는 속이 빈 껍질이다. 그것으로는 허기만 속일 뿐 결코 배를 채울 수 없다. 세상의 그 무엇이 당신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가? 재물과 명예와 학문과 성공, 그 어떤 것도 당신을 만족하게 할 수 없다. 이것은 그 모든 것들이 쥐엄 열매라는 증거인 것이다.

 

7. 각성 - 성령의 역사

궁핍에 처했을 때 비로소 아들은 눈을 떴다. 그는 제 정신이 들었으며 아버지의 집이 얼마나 좋은가를 기억하기 시작했다. 배고픔을 느끼고 돼지우리의 악취를 느끼는 것이 복음의 시작이다.

어떻게 이 아들이 배고픔을 느끼고 돼지우리의 악취를 느끼게 되었는가? 누가복음 15장의 앞의 비유에서 여자가 잃어버린 동전을 찾기 위해 등을 들고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는 한 줄기 성령의 빛이 필요하다. 한 줄기 빛이 비출 때 자신이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를 알게 되고, 세상이 악취나는 돼지우리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벧전 1:2).

 

8. 사람의 종교적 관념

그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오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죄를 기억했으며 자신이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될 자격이 없음을 느꼈다. 그러므로 그는 세 마디의 말을 준비했다. 첫번째는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이고, 두번째는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이고, 마지막 한 마디는 나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소서이다.

이것은 한 죄인이 눈을 뜨고 하나님께 돌이킬 때 그가 하나님께 득죄했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임을 보여 준다. 바꾸어 말해서 그는 하나님께로 가서 어떤 것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때문에 사람은 자신의 일과 좋은 행위로 하나님의 좋은 것과 바꾸려 한다. 이것이 모든 회개한 죄인들의 그릇된 관념이며, 이것 때문에 그 둘째 아들은 아들 대신에 품꾼이 되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단 타락한 죄인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얻으려고 항상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거스르고, 그분의 마음과 뜻에 대한 모욕이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 둘째 아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이 아들이 되기에 자격이 없음을 느끼고 품꾼의 하나가 되고자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많은 죄인들은 어떤 겸손한 마음이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회개하는 죄인들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품꾼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한 사람들이 자기가 받는 것의 댓가로 일을 하는 고용된 품꾼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값없이 물려 받는 아들이 되기를 원하신다.

 

9.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둘째 아들이 성령의 빛 비춤으로 자신의 참된 상황을 깨닫고 아버지의 집을 기억했을 때 그는 일어나 아버지께로 돌아갔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회개이다. 회개란 뉘우치거나 후회하거나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등지고 세상을 향해서, 돼지 우리를 향해서 가던 방향을 바꿔서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이 바로 회개이다.

 

10. 아들을 맞는 아버지의 사랑

20절은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라고 말한다.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발견했다는 것은 아버지가 매일 집 밖에 나와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 그는 아버지가 돌아오는 그를 맞으려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는 아마도 스스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해서 무어라고 말을 꺼내야 하나? 문을 두드려야 하나? 「아버지 제가 돌아왔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아버지를 불러 내야 하나.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을 송두리째 탕진해 버렸으니 무슨 면목으로 아버지를 뵐 것인가? 분명 아버지는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지 않을거야. 아마 집에서 편하게 인생을 즐기고 계시겠지. 문을 여러번 두드려야 하인들을 시켜 문을 열어 주시겠지.

그러나 그 탕자를 놀라게 한 것은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다정하게 입을 맞춘 것이다. 아마 그 탕자는 속으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나는 불러 내지도 않았고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는데 아버지가 내게로 달려오시다니. 지금 아버지가 이렇게 더러운 나를 안고 내게 입 맞추고 계신다!고 말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발견하고 측은히 여겼다. 이것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을 말해 준다. 그리고 아버지는 측은한 마음에 감동되어 두 발로 달려가서 손으로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온 몸으로 아들을 맞이했다. 이것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볼 때 동정하는 마음으로 감동되어 달려가 그를 맞이함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 같이 형편없는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볼 때 동정으로 감동되어 달려가 온 몸으로 맞으시는 분이시다. 회개하기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무섭고 두려운 분이라고 생각하지만, 회개하고 나서는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스럽고도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된다.

 

11. 세 가지 상징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들은 준비한 말을 시작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을 거스려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나 그가 처음 두 문장을 말했을 때 아버지는 그의 말을 막았다. 아버지는 그 말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속히 제일 좋은 그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노라고 말했다(눅15:22-24).

 

(1) 그 제일 좋은 옷 - 우리의 의(義)이신 그리스도

그 제일 좋은 옷은 이미 오래 전에 아들을 위해 특별히 예비해 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단지 「그 제일 좋은 옷」이라고 말했을 때 하인들은 즉시 알아 차렸다. 이 「제일 좋은 옷」은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예표이다. 옷을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되심을 상징하며, 죄인이 그리스도를 옷 입었을 때 그는 하나님과 연결되며 의롭게 된다.

 

(2) 가락지 - 약속의 성령

이 가락지는 돌아온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인치시는 약속의 성령을 상징한다(엡1:13). 그리스도를 우리의 의의 옷으로 입고 난 후에는 생명 주는 영을 영접하는 것이다.

 

(3) 발에 신을 신기고 - 세상과의 분별

신은 사람의 발을 더러운 땅으로부터 분리시키고 걷는 데 힘이 있게 한다. 아들의 발에 신겨진 신은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분별시키는 것을 상징한다. 돼지막에서는 아무리 애써도 세상과 분별될 수 없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서 그리스도로 옷 입고, 생명주는 영을 받아들일 때 자연히 세상에서 분별되게 된다. 옷과 가락지와 신은 아버지의 집인 교회 안에만 있는 것이다.

 

12. 살진 송아지 - 우리의 음식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의 구원에는 외적인 방면과 내적인 방면의 두 방면이 있다. 외적인 방면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우리의 의이신 그리스도이며, 내적인 방면은 우리를 만족하게 하는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신 그리스도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는 것은 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살진 송아지를 먹는 것은 아들의 만족을 위한 것이다. 살진 송아지는 단지 우리가 따르는 그리스도나 우리가 경배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누림이 되기 위해 예비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제일 좋은 옷을 입고 가락지를 끼고 신을 신었다 해도 살진 송아지가 없다면 여전히 만족할 수가 없다. 오직 그리스도가 생명과 누림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실 때라야 우리는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13.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먹고 마시고 즐거워했던 것은 이때였다. 아들이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는 기쁨이 없었다. 아들이 집을 나가서 방황하고 고생하는 동안 아버지는 또한 집에서 괴로워했다. 이것은 죄인들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고 괴로워할 때, 하나님에게도 기쁨이 없음을 보여 준다. 오직 죄인들이 하나님과 함께 집에서 먹고 즐거워할 때만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복음이란 단지 죄 사함 받고 죽어서 좋은 데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이다. 복음의 절정(絶頂)은 나같이 작은 죄인 하나가 돌아올 때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