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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에서 나와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에 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 "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 롬 1:17

복음과 진리 #8 - 강도만난자

작성  광주교회   등록  2016.03.11 17:49:23   조회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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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만난 자

 ■ 성경: 누가복음 10:25-37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 말씀은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참된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부터 우리는 전통적인 관념을 내려 놓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이 구절을 성경의 빛 가운데서 읽어보기로 하자.

 

1.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이야기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깊은 속에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무신론자로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사실은 그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인간의 깊은 본성 안에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여기 있는 율법사는 분명히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문제는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각자의 대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일은 무엇을 하는가와 관계 된다. 사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 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위에 대한 이러한 사상은 모든 사람들의 피 속에 흐르고 있다. 예를 들어 의사가 되려면 의과대학에 가서 오랜 동안 공부를 하고, 인턴과 레지던트의 과정을 거치고 시험을 통과하여 전문의 자격증을 얻어야 한다. 올림픽선수가 되려면 매일 운동하고, 숨이 차도록 달리고, 끊임없이 자기를 이기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생활은 이 한 마디로 정의된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율법사는 바로 이런 관념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와서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다시 반문하셨다. 그는 정확하게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며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주님은 그 대답을 들으시고 네 대답이 옳다. 가서 그대로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답하셨다. 그때 이 사람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주님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라고 물었다.

 

2. 가장 큰 문제

여기서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 구절이 이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열쇠이다. 그 율법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했다. 이것이 문제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많은 죄나 실패가 아니라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나 세상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킨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자기를 의롭게 보이려고 한다. 심지어 감옥에 있는 흉악한 범죄자라도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한다. 감옥에 있는 살인범에게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말하면, 그에게도 여러가지 변명할 말이 있을 것이다. 자기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또는 사회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할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누군가가 당신은 죄인이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아닙니다. 나를 그렇게 나쁘게 보지 마십시오. 물론 나에게 죄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다가 어쩔 수없이 지은 것들입니다. 이 정도의 죄는 누구나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그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나은 편입니다. 물론 돈을 벌려고 가끔은 좋지 않은 수단을 쓰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처럼 형편 없는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이 정도면 그래도 선한 사람 아닙니까? 이것이 당신의 대답이 아니겠는가? 아마도 이것이 모든 사람의 대답일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하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장벽이라는 말이다. 당신이 범한 죄나, 당신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그다지 괴롭히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모든 문제들을 다 해결하실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어떻게 하실 수가 없다.

이 율법사는 주님께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은 저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것만 알려 주시면 즉시 가서 그 사람을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뜻이다. 그는 참으로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했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깨닫지 못했다.

이 질문에 답변하면서 주 예수님은 그에게 어떤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이 이야기에는 네 사람이 등장한다. 하나는 강도에게 맞아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고, 나머지 세 명은 레위인과 제사장과 사마리아인이다. 여기서 주님은 율법사에게 누가 이 강도 만난 사람의 참된 이웃이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만져야 한다. 여기서 강도 만난 사람이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이 질문을 한 율법사였다. 이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의도는 그 율법사에게 자신의 참된 상태를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사실상 네가 가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너는 정말 네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모르는구나. 네가 바로 강도를 만난 사람이고, 너는 피를 흘리고 쓰러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 네가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3.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이며 높은 산 꼭대기에 있었다. 반대로 여리고는 저주받은 도시이며, 낮은 위치에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모든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고 있다.

젊은이들에게는 순수하고 높은 이상과 꿈과 포부가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고, 높은 업적을 이루어 보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사회의 부패와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면서 자신은 결코 이렇게 부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 때 우리는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높고 고상하며 이상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이다. 당신은 지금도 자신의 인생에 긍지를 가지고 있으며, 순수하고 높은 이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잠시 당신의 깊은 속을 살펴 보고 솔직하게 대답해 보라. 당신은 지금 여리고로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주님은 이 율법사의 깊은 속을 아셨다. 젊은 율법사야, 너는 네가 지금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고 있음을 모르느냐? 한 때 너에게도 아름다운 이상과 목표가 있었지. 고상한 사람이 되고 남에게 존경을 받으며, 강하고 부지런하고, 용기있는 사람이 되려는 목표가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어떠냐? 너는 지금도 그렇게 높은 상태에 있느냐 아니면 점점 내려가고 있느냐?

당신의 생활을 돌아보라. 당신의 순수한 이상과 청년의 꿈이 올라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려가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는 모든 가면들을 벗어버리고 정직하게 말해 보라. 어렸을때나 젊었을 때 품었던 그 순수한 이상과 목표가 얼마나 더럽혀지고 하락했는가? 이것이 바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때 강도가 나타나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우리를 때리고 피를 흘리게 한다. 이 강도들은 당신을 때리고 상처를 입히고 모든 것을 빼앗아가는 사람들이다. 높고 순수한 이상이 있었지만 도중에 타협이 들어오고, 의롭기를 원하지만 부패가 기어 들어오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원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뒤에서 비방하게 된다. 끝까지 순수하기를 원하지만 세상의 온갖 더럽고 추한 것들이 우리를 더럽힌다.

겉으로 볼 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같다. 좋은 학교에 다니고, 좋은 회사에 다니고, 열심히 일하고,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말쑥하고 깨끗하고 멋있게 보인다. 주위 사람들도 당신을 부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의 속은 어떤가? 당신의 깊은 속에는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있고, 얼마나 많은 멍든 자국들이 있는가? 이것은 아무도 모른다. 부모도 모르고, 직장의 동료들도 모르고, 가장 친한 친구들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 속에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깊은 슬픔의 흔적이 있는 것이다.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일생을 걸고 충성했던 직장에서 버림 당하고……. 우리 속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으며, 얼마나 많은 부끄러운 일들이 우리 속에 감취어져 있는가? 밖으로 볼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는 강도들에게 맞은 상처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인생의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내보이지 않으려 한다. 감추고 또 감추고, 깊숙이 감추어서 절대로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 한다. 여유있는 미소로 감추고, 멋있는 자동차로 감추고, 좋은 집으로 감추고, 화려한 옷으로 감추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에서는 결코 감출 수 없다. 주님은 사실상 이 율법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너는 왜 너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하느냐? 너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느냐? 네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 가고 있으며, 강도에게 맞아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 너 자신을 감추지 말아라. 나는 너의 모든 상처를 알고 있다. 네 마음 깊은 곳에 감추인 모든 상처들, 맞아서 시퍼렇게 멍든 자국들, 네 마음 깊숙한 곳에 배어 있는 슬픔들을 다 알고 있다. 자신을 감추려고 하지 말아라. 다만 내게 마음을 열고 내가 너를 치료할 수 있도록 나를 받아들이고 너 자신을 내게 맡겨라.

 

4. 제사장과 레위인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다. 종교는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알려준다. 매 주일마다 선하게 살아야 한다. 의로운 사람이 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저 좋은 말을 하고 가버릴 뿐이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자기도 모르게 속에서부터 죄가 튀어 나오지 않는가?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할 힘이 없지 않은가? 그러나 종교는 이러한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한다.

 

5. 선한 사마리아인

그러나 주님은 이런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시지 않았다. 그분은 초라한 사마리아인으로 우리가 있는 바로 그곳에 오셔서 우리를 치료하기를 원하신다. 우리의 주님은 강도에게 맞아서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오셔서 청년이여, 일어나라. 교회에 가고, 선한 일을 하고, 거룩한 생활을 살아라고 말하는 분이 아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단지 가르침을 주거나, 당신을 심판하거나, 정죄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다만 당신에게 와서 당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주님은 강도에게 맞아서 피를 흘리며 거반 죽어가는 당신에게 오셔서 당신의 그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부으시고 당신을 치료하기를 가장 기뻐하신다.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고, 포도주는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상징한다. 주님은 지금 당신에게 그분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부으셔서 당신의 그 깊은 속에 있는 상처를 치료하기 원하신다. 당신의 생각을 새롭게 하고, 당신의 미워하는 마음을 치료하고, 모든 부분을 고쳐서 온전케 하기를 원하신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것이 바로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6.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주님은 그 젊은 율법사에게 무엇을 원하셨는가? 당신이 첫번째로 해야 할 일은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하는 모든 노력을 내려 놓는 것이다. 주님은 당신이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이고, 강도에게 맞은 사람이며, 죽어가고 있는 사람임을 알고 계신다. 그러나 당신이 자기의 의로움을 내려놓기 전에는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다. 당신이 이 율법사와 같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 알려주십시오라고 말하고 있는 한, 주님은 당신에게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

주님은 당신의 깊은 속에 있는 그 상처를 치료하기 원하신다. 오직 주님만이 당신의 마음 속에 감추인 상처를 치료하실 수 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를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 참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참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게 하고,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이 되게 하며, 가장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그저 죄인을 지옥에서 건져내서 천당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너무도 낮은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주님은 지금 당신이 정직하게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기를 원하신다. 주여, 저는 죄인입니다. 저는 세상을 사랑하고, 육신의 쾌락을 사랑합니다. 저는 의로와질 수 없고, 저는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제 속에는 감추인 많은 죄들이 있습니다. 저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람이요, 또한 강도에게 맞아서 많은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입니다. 지금 제게 오셔서 기름과 포도주를 부어주시고 저를 치료해 주소서. 주님은 이러한 고백을 가장 기뻐하신다.

36절에서 주님은 율법사에게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으셨다. 그가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하자, 주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가서 너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다른 사람들을 도와 주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제 성경의 문맥에 따라서 이 말씀을 생각해 보자. 이 율법사는 바로 강도에게 맞아 죽어가는 사람이다.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주님이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강도에게 맞아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임을 깨닫고,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선한 사마리아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는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모든 변명들을 내려 놓고,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는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라. 주여, 저는 가련한 사람입니다.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저에게 오셔서 기름과 포도주를 주시고, 저를 치료해 주소서라고 말하라. 그때 주님은 기뻐하며 우리에게 달려오셔서 우리에게 기름과 포도주를 부으시며 우리를 당나귀에 태워서 사랑스럽게 돌보시며 여관으로 데려가신다. 이 여관은 교회 생활을 상징한다. 이 여관에는 우리보다 먼저 주님을 만나서 먼저 치료받은 형제자매들이 있다. 이들이 우리를 돌보며, 후에 우리도 주님의 치료를 받고 나서 다른 사람을 돌보아 준다. 이것이 바로 가장 아름다운 신앙생활이 아닌가! 이 땅에서 참된 신앙 생활,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생활은 상처받은 자들, 부서지고 깨어진 사람들이 와서 치료받고 온전케 되는 것이다. 우리 중에 아무도 처음부터 온전한 사람이 없다. 모두가 다 상처받은 사람으로 와서 하나님의 기름과 포도주를 받아서 온전케 된 것이다. 다만 마음을 열기만 하면 주님은 매일매일 당신을 치료하셔서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심지어 그분 자신과 똑같이 되게 하신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