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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에서 나와 믿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에 계시되어 있는데, 이것은 성경에 "의인은 믿음으로 생명을 얻고 살 것이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 롬 1:17

복음과 진리 #9 - 복음의 피리소리

작성  광주교회   등록  2016.03.11 17:49:50   조회  200


하나님은 사랑.jpg 

복음의 피리 소리

성경: 마태복음 11:16-19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 아이들의 소꿉장난

모든 사람은 어린 시절에 소꿉장난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자질구레한 것들을 늘어놓고 때로는 요리하는 시늉을 하고 때로는 먹는 시늉을 하며, 아빠 엄마의 흉내를 내기도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 예수님은 이 세대를 아이들의 소꿉장난에 비유하셨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인생에는 참으로 크고 복잡한 일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어린아이들의 소꿉장난으로 보신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원대한 꿈을 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지만, 이것이 하나님의 눈에서 모두 어린아이들의 놀이와 같다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위해 고민하고 애쓰고 있는가? 학문을 연구하고, 돈을 벌고, 명예를 얻는 것이 다 하나님의 눈에서 어린 아이들의 소꿉장난과 같은 것이다.

이 세대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과 주님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중요시하는 것도 다르다. 사람들은 오늘의 생활을 중요시하며 장래의 결과를 소홀히 여기지만, 주 예수님은 오늘의 생활을 덧없는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으로 보시기 때문에 그분이 관심하시는 것은 장래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세상의 생활만을 주의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셨다. 복음은 사람들의 주의를 이 세대에서 장래로 돌이키게 하고, 이 세대에 대한 그들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이 단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생활만을 관심할 때에는 자신 속에 있는 죄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깨닫지 못하지만, 영원한 세계와 장래의 심판을 주의할 때 그의 양심은 깨어나서 자신이 죄가 있음을 알게 한다.

이 비유에서 아이들은 두 가지 놀이를 하고 있다. 하나는 피리를 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애곡하는 것이다. 피리를 부는 것은 잔치놀이를 하는 것이다. 보통 한 아이가 피리를 불면 다른 모든 아이들은 춤을 추면서 잔치 하는 흉내를 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말씀에서는 피리를 불어도 다른 아이들이 춤을 추지 않았다. 또 애곡하는 것은 장례식 놀이를 가리킨다. 한 아이가 장송곡을 부르며 애곡을 하면 다른 아이들은 가슴을 치며 슬퍼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애곡을 해도 가슴을 치며 슬퍼하지 않았다. 주님은 이 두 가지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계신다. 이 비유 속에는 아주 의미심장한 상징들이 있다.

이 비유는 기쁜 일을 당해도 기뻐하지 못하고 슬픈 일을 만나도 슬퍼하지 못하는 마비된 세대를 보여 준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는 인간성이 마비된 세대요, 순수한 사람의 마음이 다 굳어진 세대이다. 또한 이 세대는 세례 요한을 배척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대이다. 세례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잠시 후면 너희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복음을 무시하고 그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으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한 것이다. 나는 너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리고 너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이 땅에 왔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가 곧 생명의 물이다. 나를 영접하고 나를 받아들이라.고 외치셨지만, 이 세대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거절했다.

 

2. 울부짖음과 피리 소리

16-17절에서 주님은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꼬.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의 내용은 두 가지이다. 먼저는 애곡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피리를 부는 것이다. 먼저 주님의 복음은 애곡하고 울부짖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죄가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멸망의 길에 있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복음은 울부짖는 것이며, 그 목적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와 임박한 멸망을 깨닫고 회개케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복음이 다만 울부짖고 통곡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이 복음은 더 이상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슬픈 소식이 될 것이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그 애곡이 끝이 아니고, 그 애곡이 피리를 불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피리를 부는 것은 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가져가시고, 우리를 멸망으로부터 구출하시며,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자임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포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다.

18절에서 주님은 먼저 세례 요한을 언급하셨다. 세례 요한의 사역은 애곡하는 사역이며, 회개케 하는 사역이다. 여기서 회개란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무슨 생각을 바꾸라는 말인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생각을 바꾸라는 말이다. 당신이 하나님을 떠나 거창한 인생의 목적을 세우고 많은 것을 얻으려 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어린아이의 소꿉장난으로 보신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스스로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할 때 첫번째 결과는 인간성이 상실되는 것이다. 사람 속에 재물이 들어가고, 명예가 들어가면 첫 번째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시는 문제이다. 돈을 많이 벌고, 사회에서 조금 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인간성이 상실된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슬퍼하고 애곡하며 울부짖어야 한다. 경력을 더 많이 쌓고, 더 높은 학위를 얻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성취했는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점점 마음이 굳어지지 않았는가? 주님은 바로 이것으로 인해 애곡하시는 것이다. 우리 또한 주님의 애곡하심을 듣고 함께 울부짖어야 한다.

 

3. 하나님의 구원 - 인간성의 회복

구원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이란 다만 이 땅에서 많은 축복을 받고 죽어서 좋은 데 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정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는지 아는가? 19절에서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인자(人子)」, 곧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왜 여기서 주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지 않고 「인자」라고 말씀하셨는가? 그 이유는 주님이 관심하시는 것이 우리의 인간성을 회복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지 주일마다 설교를 듣고 종교적 의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신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죄라는 것은 바로 파괴된 인간성이고, 하나님의 구원이란 이렇게 파괴된 인간성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왜 인간성이 파괴되었는가? 죄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하고 분리되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자신의 힘으로 먹을 것을 벌어야 하고, 자기를 방어해야 하며, 스스로의 기쁨을 찾아내야 한다. 그 결과가 바로 인간성이 상실되는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 어린아이들을 비유로 들어서 복음을 전하셨다. 어린 아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순수한 인간성이다.

인간성이 상실된 사람은 참으로 기뻐해야 할 때 기뻐하지 못하고, 정말 슬퍼해야 할 때 슬퍼하지 못한다.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돈이 생기는 것」이다. 또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을 때 기쁘고, 사업이 잘 되어갈 때 기뻐할 것이고, 회사에서 진급할 때 기뻐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기뻐하지만 복음의 피리 소리를 들을 때 그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피를 흘려 죽으시고, 이제 생명 주는 영으로 우리 안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신다는 놀라운 복음을 들어도 그들은 전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미쳤다고 비웃고 배척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의 모습이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이성 없는 짐승과 같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점점 비인간화 되어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조차도 물질주의가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될수록 사람들의 인간성이 파괴되어 가는 것을 염려한다. 나이가 조금 든 사람들은 흔히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말한다. 그때에는 물질적으로는 조금 어려웠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맛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돈을 좋아하고, 아파트를 좋아하고, 고급 차를 좋아한다. 그러나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어도 기뻐하지 않는다. 복음이란 원래 「기쁨의 통보(glad tiding)」라는 말이다. 가장 기쁜 소식을 전해 주어도, 즐거운 복음의 피리를 불어도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은 기뻐하지 않는다. 당신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가? 요즘 젊은이들은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고 이상한 옷차림을 좋아한다. 그러나 복음의 피리소리를 들어도 기뻐할 줄 모른다.

두번째로 이 세대의 사람들은 장송곡을 불어도 슬퍼하지 않는다.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침례자 요한은 사람들이 영원한 멸망의 심판에 떨어질 것을 알았기 때문에 애통하여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 죄악의 대가가 얼마나 중한 것인지 아는가? 성경은 한 번이라도 거짓말을 한 사람은 다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갈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잠시 후에는 이 세상의 시간이 끝나고 당신의 눈 앞에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이 놓여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애곡하며 통곡하며 복음을 전파해도 타락한 사람들은 무덤덤할 뿐 자신의 죄를 슬퍼하지 않고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당신은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 같은가? 이 세상에 죽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언젠가는 분명히 당신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 시간은 얼마나 빨리 지나는가? 당신은 지금 선택해야 한다.

이 세대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을 정신 나간 사람으로 여기고 귀신들린 사람으로 여긴다. 그러나 분명히 심판의 날이 올 것이고, 그 때에는 깨달을 것이다. 누가 정말 미친 사람인가는 잠시 후에 드러날 것이다.

침례자 요한의 애곡하는 사역 다음에는 인자(人子)이신 주님의 피리를 부는 사역이 있다. 주님은 기쁨의 피리를 부시는 분이기 때문에 이 땅에 오셔서 먹고 마셨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그분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웃으며 조롱했다. 이 세대의 사람들은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기쁜 생활을 정신나간 시간낭비라고 비웃는다. 그들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함께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공부를 열심히 하든가, 일을 해서 돈을 벌든가 할 것이지 뭐가 좋다고 날마다 이렇게 모여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가? 이것이 바로 복음을 배척하는 이 세대의 모습이다. 이렇게 복음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다 교만하다. 23절에서 주님은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고 부르짖으셨다. 지금 당신이 교만한 마음으로 이 복음을 배척한다면 잠시 후에 당신은 음부의 불 속에 떨어질 것이다.

 

4. 회개와 영접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기 원한다면 먼저 회개해야 한다. 회개라는 것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고, 생각을 바꾸는 것은 바로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까지 배우고 붙잡고 있는 가치관은 다 구부러진 가치관이고 왜곡된 가치관이다. 돈이 가치 있고 명예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서 순수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회개한 다음에는 주님을 영접해야 한다. 요한복음 6:54-55에서 주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말씀하셨다. 복음이란 것은 어떤 의무를 지키거나, 무거운 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먼저 가치관을 바꾸고,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떡으로 먹고 생명의 물로 마시는 것이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하고 높은 인간성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타락하고 구부러진 인간성을 치료하고 회복시킨다. 지금까지 당신이 목표로 삼았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당신의 가치관을 바꾸라. 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저 돈만 많이 벌어주는 아버지보다 가족들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주고, 함께 대화하며, 즐거워할 때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하는 그런 인간적인 아버지를 더 좋아하지 않겠는가?

 

5. 지혜로운 선택

이제 당신은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한다. 복음의 울부짖음을 들을 때 비웃지 말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심판받고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사람임을 인정하라. 또한 복음의 피리소리를 들을 때 마음을 열고 그분을 생명의 떡과 생명의 물로 영접하라. 슬퍼하고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복음의 울부짖음에 반응하고, 기뻐함으로 복음의 피리소리에 반응하라. 이것이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